<첫 책 동무>
처음 책을 동무삼은 게 제 나이 10살 때 일입니다.
새 학기가 막 시작한 이른 봄날이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친구 분에게 책 세 권을 빌려와 제게 주셨어요.
“돌려줘야하니 깨끗하게 봐야 해.”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무척 설렜어요.
어머니의 다음 말에 저는 더 설렜지요.
“다 읽고 맘에 드는 거 한 권만 골라봐. 사줄게.”
며칠 뒤, 설렘은 고민으로 바뀌었어요.
세 권 모두 어찌나 재밌던지 딱 한 권을 고르기 힘들었으니까요.
<플루타크 영웅전> <얄개전> <장발장> 이렇게 세 권이었습니다.
플루타크 영웅전은 고대 로마시대 영웅들 이야기고요.
얄개전은 정말 재밌고 웃기는 우리나라 명랑소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동화로 만든 책이었죠.
내용들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삽화들 몇 장면은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요.
제가 고른 책은 <장발장>이었습니다.
제 것이 된 첫 번째 책, 첫 책 동무였던 거죠.
그 책을 끼고 살면서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삽화를 베껴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 장독대 옆에서 읽다가 책을 장독 뚜껑 위에 올려놓고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날 밤 비가 내렸고, 책은 하룻밤 내동 비에 젖어 버렸습니다.
다음날 보니 찬송가 만했던 책이 두꺼운 성경책처럼 변해 있더군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퉁퉁 불어 울룩불룩해진 책을 다시 또 끼고 살 수 밖에요.
그 책은 지금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문득 생각 날 때가 많습니다. 그립기도 하고요.
내 첫 번째 책 동무!
어른이 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전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 인생 첫 책 동무가 내 운명을 결정지어 준 거 같아!”
만약 그때 내가 <플루타크 영웅전>을 선택했더라면,
난 영웅을 꿈꾸며 육군사관학교에 가 장군이 됐을지도 몰라!
만약 그때 내가 <얄개전>을 선택했더라면,
난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맨이나 코미디 배우가 됐을지도 몰라! 라고요.
대개 사람들은 농담처럼 듣고 웃지만 전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다정하고 정의롭고 용감한 등장인물들, 장발장, 코제트, 마리우스......
저도 그들처럼 다정하고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청년시절 노동운동을 하고 마흔 살에 첫 만화책 ‘술꾼’을 내 만화가가 되고
이제 작가 겸 책방지기가 된 지금까지 그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책을 통해 만난 그 동무들이 ‘내 마음’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
가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만나 ‘작가 강연’이라는 걸 합니다.
책 이야기를 나누며 자주 꺼내는 주제가 ‘내 마음대로 살기!’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물으면 많은 대답이 나오더군요.
돈, 집, 좋은 직장......등 등.
제 답은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있어야 내 마음대로 살지요. 하하!
책을 동무삼아 선생님 삼아 ‘내 마음’을 만들어 간 제 경험을 들려주며,
결국 독서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거죠. 진심을 다해서!
저는 그동안 책을 통해 많은 동무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때론 아니다 싶은 책을 만난 적도 있지만 그조차도 ‘내 마음’을 자라게 했지요.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책 동무는 바로 첫 책 동무 <장발장>입니다.
그 강렬하고 짜릿한 기억...
책동무님께 첫 이야기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당신의 첫 책 동무에 대해 궁금해지는군요.
기억나시나요?
언젠간 답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친절한 책 동무 ‘은홍씨’가 올립니다.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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