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는 자꾸 옛날 일을 꺼내시고 할매는 한사코 말리시고...
-내가 여서 나고 자라 이 근동을 다 살아봐서 아는디 어진네 집터가 젤여!
쩌너머 살다 여기 옹게 내 동갑만 스물여섯명여.
애고 어른이고 사람이 득시글혀써. 인쟈 다 죽고 나만 남았지.
왜정 끝나고 시험쳐서 국민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는디...
-하이고 옛날이야기 허지 말고 지금 사는 이야길하소. 어진아바이어마이가 싫어햐
-아뇨. 재미나요.
-인공때 의용군이 되가꼬 쩌 경상도 어디께서 여 팔목에 총알 파편이 와박혀가꼬 요래 팍 꺾여분졌단말여.
냉중에 집에 와서 호미질허다 울었어. 힘이 안 들어가는겨. 팔목에. 봐 이거시 흉터여.
-이냥반이! 지난 이야기 그만 하랑게. 늘거감서 말도 디게 안드러.
-내가 안 혀본 일이 없어. 송판키고 가구짜고 집지러 댕기고...
혼인헐때 사람들이 울 장인헌테 사위 참 잘 얻었다고...
-호호호! 이이가 그땐 인물이 좋았어. 착허고. 어진아바이마냥!
-에? 저야 뭐...ㅎㅎㅎ
-스물넷에 장가들었는디 이사람 동네강게 노총각이라고 놀리는겨...
-고마하랑게!
-그래가꼬 내가...
어제 유일한 예약 손님 한팀(2인) 배웅하러 나갔다가 심심한책방 앞 심심정에서 쉬고 계신 앞집 어르신들과 수다 한판을 벌였다.
서서 듣자니 다리 아프고 앉아 듣자니 할 일이 밀려았어 맘이 바쁘고ㅎㅎ
고추밭에 물 주려고 자릴 뜨는데 옆집 아짐께서 나오셔서 애절하게 날 찾으셨다.
-테레비가 깜깜허니 암꺼도 안 나온디 쫌 바주소잉.
가서 리모콘으로 이거저거 해보고 셋톱박스 껐다키고 해도 안 된다.
100콜센터에 전화했더니 외부선 문제라 집 안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낼 기사님이 출동하신단다.
-어쩐대유. 테레비 없으믄 저녁내 머헌댜
-죄송해요. 제가 어케 할 게 없다네요.
지하수 뻠쁘가 고장났는지 전원을 꽂아도 미동도 없어서 물조리로 열댓번을 날랐다.
바쁜 하루였다.
심심한책방잉데 오늘도 안 심심했다.
책방대표 까칠한 헤원씨가 저녁에 이러신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고픈 말씀들이 참 많으셔. 책방에 모셔서 그림책을 읽어드리고 당신들 말씀을 맘껏 하시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 어떨까?
-어? 어! 좋겠네.
누구 말마따나 안 심심한책방이 될라나...
난 심심한책방이 좋은데...
이거 쓰는데 막 전화를 받았다.
저번 주 다녀가신 분이 식구들과 함께 오신단다. 한 시간 뒤에!
이크. 언능 밥먹자!
오늘도 심심하긴 글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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